조선업의 설계는 이제는 사람이 아닌 AI가 주도할까
전통적인 조선업에서 설계는 경험과 감각이 좌우하는 분야이었다. 수십 년간 설계를 맡아온 선임 설계자의 감, 과거 프로젝트의 반복, 선급 규정에 맞춘 수정 등은 설계의 핵심 흐름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 고정관념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바로 AI 기반 설계 시스템의 등장과 확산 때문이다.
이제 조선소의 설계실에서는 엔지니어들이 펜과 마우스를 사용하는 대신, AI가 제안한 설계 시안을 평가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업무 구조가 바뀌고 있다.
조선업에서 설계는 단순히 선박의 형상을 그리는 일이 아니다. 수많은 기준이 존재한다.
선박이 바다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움직일 것인가, 기상 상황에 따라 어떤 동적 응답을 보일 것인가, 엔진의 출력이 구조물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강재 배치를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가 등 수백 개의 공학적 변수와 제약 조건이 동시에 얽혀 있다.
따라서 설계자는 일일이 그 조합을 분석하고 최적의 해답을 찾아야 하는 고난이도 업무를 수행해왔다.
그러나 이 복잡성과 변수야말로, AI가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다. AI는 과거의 설계 도면 수천 건을 학습하고, 시뮬레이션 데이터와 연결하여 이럴 땐 이렇게 설계하면 좋다는 공학적 패턴을 스스로 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LNG선의 탱크 위치와 엔진실 간 거리, 연료 효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거나, 선체 구조 변경에 따른 진동 특성을 예측하는 등의 고난도 판단을 스스로 수행한다.
이러한 기술은 현재 AI 기반 조선설계 자동화 플랫폼이라는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조선소는 이제 AI에게 설계 조건만 입력하면, AI가 수십 개의 대안 설계를 순식간에 도출하고, 그중 규격 충족률, 제조 편의성, 원가 효율이 가장 높은 안을 제안해준다. 설계자는 그 제안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추가 조건을 입력해 AI가 재계산하도록 요청하면 된다. 사람은 판단자, AI는 생성자가 되는 구조. 이 흐름이 지금 조선업 설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조선업에서 AI 설계 기술은 조선소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AI가 선박을 설계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현재 조선소에서는 실제로 다양한 AI 설계 시스템이 상용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선체 설계에서는 형상 자동 생성 AI가 널리 쓰인다. 조선 엔지니어가 선박의 총톤수, 목적, 선속, 운항 해역 등의 조건을 입력하면 AI는 이에 맞는 최적 선체 형상과 프레임 배치를 자동으로 생성한다. 과거에는 이 작업에만 수주일이 걸렸지만, 지금은 단 몇 시간 만에 결과물이 나오는 시대다.
그리고 배관 설계 자동화는 AI 도입의 대표적 사례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배관은 공간이 제한된 선박 내에서 설계 난이도가 매우 높은 분야인데, AI는 3D 모델을 학습한 후 각 장비의 위치와 파이프 직경, 흐름 조건 등을 고려해 충돌 없는 배관 경로를 자동 도출한다. 이 과정은 사람이 수작업으로 하면 수일이 소요되지만, AI는 수천 개의 조합을 시뮬레이션한 뒤 최적 해를 도출한다. 더불어 AI는 기존 설계와 비교해 재료 낭비 최소화, 시공 편의성 향상, 유지보수 접근성 확보 등 다양한 기준을 동시에 고려한다.
최근에는 스마트 CAD 시스템도 등장했다. 기존 CAD 프로그램이 단순 도면 작성에 그쳤다면, AI 기반 CAD는 엔지니어가 설계 중 문제를 감지하면 즉시 자동 보완 시안을 제안하거나, 규격에 맞지 않는 설계 요소를 실시간으로 수정 제안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선박의 구조물이 선급 규정보다 얇게 설계되었다면 AI가 이를 감지하고 적절한 강재로 교체를 제안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오류 검출을 넘어, 설계의 품질을 선제적으로 향상시키는 전략적 도구로 기능한다.
이러한 기술은 대부분 AI가 딥러닝 기반으로 설계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물이다. 조선소는 AI에게 수천 건의 과거 설계, 실패 사례, 성공 사례를 입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AI가 스스로 학습 설계 모델을 생성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제 선박 설계로 연결되며, 설계 품질과 속도 모두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조선업에서 AI가 선박을 전부 설계하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AI가 조선업에서 설계를 전담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설계자의 역할과 업무 방식이다.
과거 설계자는 손으로 직접 도면을 그렸지만, 이제는 AI가 도출한 수십 개의 대안을 검토하고, 그 중에서 가장 경제적이고 안전한 안을 선택하고 조율하는 관리자로 변화하고 있다. 즉, 직접 만드는 설계자에서, 설계를 감독하는 전략가로 역할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설계 프로세스 전체가 획기적으로 단축되고 있다. 기존에는 기본 설계 → 상세 설계 → 시공 설계의 흐름을 따랐고, 각 단계마다 수개월이 소요됐다. 하지만 AI는 이 세 단계를 병렬로 수행하거나, 변경 사항을 자동 반영함으로써 설계 주기를 30~50% 단축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조선소 입장에서는 납기 단축, 원가 절감, 선주 대응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AI 설계는 선박의 안전성과 환경 대응력까지 개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는 선체 구조의 응력 분포를 시뮬레이션하여, 자연재해 상황에서 어떤 부위가 먼저 파손될 수 있는지 예측하고 이를 반영해 구조를 보강할 수 있다. 또한 연료 효율을 극대화하는 선형을 자동 설계함으로써,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ESG 규제에도 대응할 수 있다. 즉, AI 설계는 기술적 우위를 넘어서 조선업의 지속 가능성까지 확보하는 핵심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기술 자동화 수준을 넘어서, 조선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흐름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수작업 도면 하나하나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AI가 만든 수천 개 설계를 어떻게 활용하고 판단할 것인가가 조선소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AI 설계 시대에 조선소는 더 이상 작업장 중심이 아닌, 데이터 중심의 기술 전략 기업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조선업은 AI가 전부 설계하는 시대에서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물론 AI가 선박을 전부 설계하는 시대가 오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첫 번째는 책임 소재에 대한 문제다. 설계를 AI가 수행했을 때, 설계상의 결함이 발생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지는가? 지금은 여전히 사람이 검토하고 승인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법적 책임은 설계자에게 있다. 그러나 AI가 자율 설계까지 수행하게 될 경우, 인증 체계, 법적 해석, 계약 구조 모두가 재정립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AI 설계의 검증 문제다. AI가 생성한 설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다양하지만, 그 모든 설계가 선급 규정이나 실제 시공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조선소는 AI 설계 결과에 대해 이중 검증 체계, 즉 AI+인간의 협업 리뷰를 강화해야 하며, 이는 설계 직무의 재교육, 기술 훈련, 조직 문화 개선이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다.
세 번째는 데이터 보안과 지식 자산 보호의 문제다. AI가 학습한 데이터는 조선소의 핵심 자산이기도 하며, 이를 보호하지 못하면 경쟁 조선소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AI 설계 시스템의 보안성 확보, 내부 접근 통제, 협력업체와의 데이터 공유 기준 마련 등이 시급한 과제가 된다. 특히 해외 선주와 공동 설계를 진행할 경우, 데이터 소유권 문제도 복잡하게 얽힐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사람의 직무 재정의 문제다. 설계자가 AI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설계 방향을 결정하는 기술 판단자로 거듭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교육 문제를 넘어, 조선소 내 전체 인력구조, 직무 정의, 인사 시스템까지 변화해야 하는 과제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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