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이야기

조선업 파견직과 도급의 차이, 조선소에선 어떻게 다룰까

kunda79 2025. 7. 10. 03:21

조선업은 다양한 고용형태가 뒤섞인 산업이다

조선업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으로 완성되는 복합적인 일자리이다. 하나의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 수천 명이 현장에서 동시에 움직이며, 각자 맡은 분야에서 맡은바 역활 수행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조선소는 다양한 고용 형태를 운영하게 되며, 대표적인 유형이 바로 파견직과 도급 인력이다.

 

두 형태는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법적 지위, 업무 책임, 고용 안정성, 작업 지휘체계 등에서 본질적으로 큰 차이를 가진다. 특히 조선소 현장에서는 이 두 고용 형태가 혼재되면서 혼란과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고용 형태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일하는 일이 흔하며, 이로 인해 임금 체불, 책임 불명확, 사고 발생 시 보호 부재 등의 문제가 반복된다. 이 글에서는 파견직과 도급의 개념을 구분하고, 조선업에서 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조선업에서 파견직과 도급은 법적으로 명확히 다르다

조선업 파견직은 근로자가 파견업체와 고용 계약을 맺고, 실질적인 업무는 다른 회사(사용사업주)에서 수행하는 고용 형태를 말한다. 즉, 근로자는 A업체와 계약을 맺지만, 실제로는 B조선소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 구조다. 파견직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규제를 받으며, 일정한 업종과 기간에 제한이 있다. 조선업의 경우 제조업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파견근로가 허용되지 않지만, 일부 예외 조항이나 법 해석의 틈을 이용해 현장에서 운영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는 불법파견 논란으로 이어지며,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도급은 업무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여, 독립된 사업자가 자기 책임하에 작업을 수행하는 구조다. 도급업체는 작업을 수행할 인력을 자체적으로 고용하고, 장비와 작업 방식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조선소는 전체 공정 중 일부 작업(예: 도장, 배관, 전기, 의장 등)을 외주화하여 특정 도급업체에 맡기고, 그 업체는 일정 기간 동안 현장에서 작업을 진행한다. 이 경우 조선소는 도급업체에 전체 공정을 위임하지만, 도급업체의 개별 근로자에게 직접 지시를 내릴 수는 없다. 만약 도급 형태라고 하면서도 조선소 관리자가 도급 근로자에게 작업 지시를 하는 경우, 이는 위장도급 또는 불법파견으로 간주될 수 있다.

조선업은 공정 특성상 외부 인력 활용이 불가피한 산업이지만, 이러한 법적 기준과 현실 간 괴리가 큰 상황이다. 특히 수급 인력 부족, 납기 일정 압박 등으로 인해 법 테두리 밖의 파견과 도급 운영이 묵인되는 경우도 많고, 이는 근로자 보호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

 

조선업에서 파견과 도급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조선업의 현실적인 조선소 현장에서는 도급과 파견의 구분이 이론처럼 명확하게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부 조선소에서는 도급업체의 인력이지만, 조선소의 반장이나 공정 관리자에게 직접 작업 지시를 받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도급 계약이라 하더라도 실질은 파견 근로에 가까워지며, 법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작업자의 고용 안정성이나 임금 지급 책임에 대한 혼란은 도급 구조 내에서 더 자주 발생하며, 이로 인해 근로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있다.

또한 현장에서는 ‘도급업체’라는 명목 하에, 실질적으로는 단순 인력공급만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업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안전관리, 기술교육, 사고 대응 능력 등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단가 경쟁을 통해 수주를 받다 보니 최소한의 인건비와 장비만을 제공하고 현장에 투입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작업 효율과 안전수준이 낮아지고, 사고 발생률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반면 일부 전문 도급업체는 숙련된 기술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고품질 작업을 수행하며, 조선소와 장기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기술 축적과 품질 관리가 가능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근로 환경도 유지된다. 결국 조선업 내 파견과 도급의 운영 실태는 업체 간, 조선소 간, 공정 간 편차가 매우 크며, 체계화되지 않은 인력 운영 구조는 산업 전반의 품질과 신뢰도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조선업의 인력 구조를 정비하지 않으면 위험은 계속된다

조선업에서 파견직과 도급 근로자는 산업 현장의 기반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정규직과 비교해 고용 안정성, 처우, 보호 수준 등에서 열악한 위치에 놓여 있다. 특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거나, 근로자의 법적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작업자 개인에게 돌아간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조선소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 대부분은 협력업체나 도급업체 근로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는 구조적 문제이며, 단지 개인의 부주의나 관리자의 실수로 치부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조선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력 확보와 생산성 향상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인력 운용의 방식이 법적 기준을 지키지 않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고용 형태를 방치한다면 장기적으로 산업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파견과 도급이 필요하다면 그 고용 형태에 맞는 책임, 교육, 보호 조치를 정확하게 이행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조선소가 협력업체의 인력에 대해서도 ‘동등한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하며, 이를 통해 산업의 신뢰도와 지속 가능성이 함께 향상될 수 있다.

산업은 결국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조선업이 아무리 고도화되고 자동화된다 하더라도, 최종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은 여전히 현장 인력이다. 그들이 어떤 고용 형태에 있든, 존중받고 보호받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조선업은 진정한 기술 강국의 기반 위에 서게 될 것이다.

 

조선업의 파견·도급 구조는 변화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힌다

조선업의 고용 구조는 과거의 성공 방식을 고수하며 현재까지 이어져 왔지만, 이제는 그 구조 자체가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 환경과 강화된 법적 기준, 그리고 근로자들의 권리 의식 향상 속에서, 파견과 도급이라는 방식이 더 이상 비용 절감이나 유연성 확보라는 명분만으로 정당화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특히 글로벌 발주처들은 이제 선박 품질뿐 아니라 제조 과정의 투명성, 인권 존중, 안전 관리 수준까지 평가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는 흐름 속에서, 인권 침해 우려가 있는 고용 구조는 조선소의 국제 경쟁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유럽계 선주는 작업자의 인권 보호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조선소에 발주를 꺼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산업 현장에서는 숙련 기술자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파견이나 도급으로 근무하며 고용 불안정을 겪는 숙련 인력은 장기 근속을 꺼리게 되고, 이는 노하우의 단절과 기술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이는 단기 생산성에는 영향이 없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선업의 ‘기술 DNA’가 희석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조선업은 단순히 고용 형태를 유지하기보다, 전면적인 인력 전략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고위험·고기술이 요구되는 핵심 공정에는 가능한 한 직접 고용을 확대하고, 도급과 파견 인력에게도 사내 기준에 준하는 안전·복지·교육 체계를 적용해야 한다. 또한 도급업체 선정 시 단가 중심의 계약이 아닌, 근로 조건, 기술력, 인권 기준 등을 평가 항목에 포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조선소는 ‘외부 인력’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협력업체 근로자도 조선소의 성과와 위상에 기여하는 공동의 파트너로 대우해야 한다. 관리와 책임이 단절된 고용 구조는 결국 산업 자체의 기반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조선업의 세계 시장 주도권을 잃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조선업은 단순한 ‘배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기술, 팀워크, 안전, 상호 존중이 어우러진 집합적 창조 산업이다. 진정한 선진 조선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생산 방식만이 아닌, 사람을 대하는 방식부터 혁신되어야 한다. 파견과 도급이라는 오래된 프레임을 재검토하고, 모두가 책임과 권리를 공유하는 고용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