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이야기

조선업의 하청구조, 위험해지고 있다.

kunda79 2025. 7. 9. 02:20

조선업의 하청구조는 산업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대한민국 조선업은 세계적인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만성적인 문제로 지적받는 하청구조가 많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소는 본래 막대한 자본과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 산업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인건비 절감과 경영 유연성을 이유로 하청·재하청 구조는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조선업의 하청구조가 위험해지는 이유.

조선업의 생산현장에서는 정규직보다 하청 근로자가 훨씬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이들은 안전, 임금, 복지 모든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환경에 놓인다. 특히 대형 조선소의 구조적 이익이 다단계 하청으로 분산되면서, 사고 위험과 고용 불안정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실정이다. 조선업은 첨단 기술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불합리한 고용 시스템이 뿌리처럼 남아 있으며, 이는 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조선업의 하청구조가 왜 위험한지, 어떤 문제가 반복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짚어본다.

 

조선업의 하청구조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조선업은 다른 제조업보다 생산 과정이 복잡하고 인력 의존도가 매우 높은 산업이다. 하나의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수천 개의 부품 조립, 용접, 도장, 전기설비, 파이프 설치 등 다양한 공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조선소에서 자체 인력으로 수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이에 따라 공정별로 특화된 협력업체가 투입된다. 처음에는 전문성과 효율성을 위한 협력이었지만, 점차 비용 절감과 인건비 조정을 위한 하청 의존 구조로 바뀌게 되었다.

대형 조선소는 선박 전체의 설계와 일정 관리를 담당하고, 실질적인 작업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에 이르는 하청업체가 수행한다. 그 하청업체 또한 다시 재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다단계 구조가 형성되며, 이 과정에서 실제 작업자는 원청의 관리 범위를 벗어난 상태에서 일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법적·제도적 책임의 분산을 가져오며, 작업자의 권리 보장은 점점 약해진다.

하청업체는 대부분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자금 운용이 어렵고, 작업자의 고용 역시 일용직 또는 계약직 형태가 많다. 즉, 조선업이라는 국가 주력 산업의 한가운데에 불안정 고용 구조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하청 구조는 위기 상황에서는 조선소가 손쉽게 인건비를 줄이는 수단이 되며, 구조조정의 1순위가 하청 노동자가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조선업 하청구조가 노동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이유

조선업 하청 노동자는 공식적으로는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원청 조선소의 작업 지시와 설비를 그대로 사용하며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원청이 아닌 하청업체에만 국한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작업자 개인에게 돌아간다. 조선업은 고온, 고소, 협소 공간에서의 작업이 많기 때문에 산업재해 위험이 매우 높은 산업군에 속한다. 그런데 하청 노동자는 대부분 단기 계약자이거나 경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작업 환경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나 안전 장비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히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하청 구조 안에서는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다. 작업 지시는 원청에서 내려왔지만, 인력 관리와 장비 제공은 하청업체 몫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책임과 권한이 분리된 구조는 사고 예방을 어렵게 만들며, 실제로 대형 산업재해의 다수는 이런 다단계 하청에서 발생해 왔다. 예를 들어 용접 작업 중 발생하는 화재나, 밀폐 공간에서의 질식사고는 대부분 하청 노동자에게서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

또한 하청 노동자는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원청 노동자보다 임금이 낮고, 복지 혜택도 거의 없는 수준이다. 정규직에게는 지급되는 숙소, 식비, 의료지원 등이 하청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장기 근속을 하더라도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러한 차별은 단순한 급여 문제가 아니라, 조선업 노동 구조의 불평등을 상징하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결국 하청 노동자는 조선소라는 거대한 산업 시스템 안에서 ‘소모 가능한 부품’처럼 취급되고 있으며, 이는 산업의 도덕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중대한 문제다.

 

조선업의 하청구조는 산업 경쟁력도 약화시킨다

조선업의 하청 노동 구조는 단지 노동자의 안전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자체의 경쟁력도 점차 약화시킨다. 조선업은 정밀한 기술력과 숙련된 인력이 필수적인 산업이다. 하지만 하청 구조에서는 경험 많은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인력은 해산되고, 다음 현장에서 다시 모집되기 때문에 노하우의 축적이 어렵다. 이는 작업 품질의 불균형으로 이어지며, 선박의 납기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는 공정 관리가 복잡해지고, 원청과 하청 간의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아 생산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기술 전달, 설계 변경, 안전 규정 등이 일관성 없이 전달되면, 전체 작업 흐름에 혼선이 생긴다. 결국 생산성이 저하되고, 선박 건조 일정이 지연되거나 품질 문제가 발생하는 리스크가 커진다. 이러한 문제는 발주처에게 신뢰를 잃게 만들고, 국가 전체의 조선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다.

글로벌 조선시장은 이제 단순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품질과 납기, 친환경 기술, 고객 맞춤형 설계 능력 등이 경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 그런데 조선업의 기초 단위인 작업 현장이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로 유지된다면, 고부가가치 선박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어려운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고품질 선박을 만들기 위해서는 숙련되고 안정적인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 인력은 일정한 고용 보장과 공정한 처우 속에서 유지된다. 따라서 하청 중심 구조는 단기적인 비용 절감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해치는 구조적 한계가 될 수 있다.

 

조선업이 하청구조를 넘어야 미래가 열린다

조선업은 지금까지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 구조를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구조가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해치고 있으며,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몇몇 대형 조선소들이 정규직 채용 확대, 협력업체와의 상생 강화, 안전 관리 책임 강화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구조 변화는 더딘 상황이다. 다단계 하청을 줄이고, 핵심 공정에 대한 직접 고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조선업을 국가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향을 명확히 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노동정책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단순히 수주량과 매출만을 기준으로 성공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산업에 종사하는 수만 명의 근로자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아야 한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원청 조선소는 책임 회피가 아닌 책임 강화의 방향으로 조직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청년 인재 유입도 결국은 작업 환경과 고용 안정성에 달려 있다. 지금의 하청 중심 구조에서는 조선업에 대한 장기적 비전이나 희망을 갖기 어렵다. 산업의 미래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조선업이 다시 세계 1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고용 구조의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 조선업은 단지 선박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서, 그 배를 만드는 사람들의 안전과 권리를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기술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