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조선업의 인력난을 해결할 가능성이 있을까.
조선업은 왜 이렇게 사람을 구하지 못할까
조선업은 대한민국 수출산업의 핵심이자,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조선소 현장에서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수주 물량은 늘었지만 이를 실제로 건조할 수 있는 인력은 부족하고, 그 결과 납기 지연, 품질 저하, 생산성 하락이 반복되고 있다.
이 같은 인력난의 원인은 여러가지 복합적이다.
첫째, 조선업은 여전히 ‘힘들고 위험한 직장’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고소작업, 중량물 취급, 밀폐 공간 등 작업 환경이 열악하고, 계절에 따라 온도와 습도 조건도 까다롭다.
둘째, 숙련 기술자의 은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청년 인력은 거의 유입되지 않고 있다.
셋째, 과거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다.
결국 현재 조선업계는 일은 있는데 할 사람이 없는 구조, 즉 고수주-저가동률의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선박을 수주하더라도 제대로 납품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이때 주목받는 것이 바로 AI를 활용한 자동화와 인력 보조 기술이다. 과연 AI는 이 고질적인 인력 문제에 실질적인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조선업 현장에 들어온 AI, 사람을 대체 가능할까
AI는 조선소 현장에서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부족한 구간을 메우고, 숙련자의 부담을 줄이는 보조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용접 로봇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에는 수작업으로만 가능하던 수직·곡면 용접 작업이, 이제는 AI가 궤적을 학습하고 자동화된 경로로 용접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대형 조선소에서는 선체 외판 용접의 일정 비율을 AI 기반 로봇이 대신 수행하고 있으며, 이는 인력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품질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배관 작업 분야에서도 AI 기반 시공 시뮬레이션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AI는 3D 설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배관 조립 순서를 자동 계산하고, 시공자의 이동 동선을 최적화해 불필요한 작업 동선을 줄인다. 이는 하루 작업량을 늘리는 동시에 작업자의 피로도는 낮추는 효과를 만든다.
크레인 운용 역시 AI 기술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중량물 이동 시 AI가 충돌 위험, 무게 중심 변화, 작업 환경 조건을 실시간 분석하고, 크레인의 동선을 스스로 조정해준다.
이 기술은 크레인 기사 1명이 하던 고난이도 작업을 비숙련자도 수행 가능하게 만들어, 인력 수급 부담을 줄여준다.
뿐만 아니라, AI는 공정 스케줄 관리, 자재 흐름 추적, 품질 검수 자동화 등에도 확장 적용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무직 인력의 과중한 업무도 분산되고 있다. 조선소에서 AI는 단순히 ‘기계’가 아니라, 부족한 인력을 메우고 경험을 전파하는 디지털 동료로서 활약하고 있다.
AI는 인력난을 해결하지만, 일자리를 없애지는 않는다
AI가 조선업 인력난의 대안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오해는 “기계가 사람을 대체한다”는 공포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AI 기술 도입을 두려워하거나 경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조선업의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람이 충분히 있다면 AI는 단지 선택일 수 있지만, 지금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AI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AI는 반복 작업, 위험 작업, 숙련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대신함으로써, 신입 인력의 투입 부담을 줄이고, 남아 있는 숙련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AI가 배관 시공 순서를 알려주면 신입 기술자도 복잡한 배관망을 비교적 빠르게 이해하고 작업할 수 있다. 또한 AI가 시공 중 실시간 오류를 교정해주기 때문에, 신입이 작업을 해도 불량률이 줄어든다. 이는 결과적으로 신규 인력의 이탈률을 낮추고, 기술 습득 속도를 높이는 효과를 만든다.
더불어, AI 기술은 조선업 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한다. 스마트 장비 유지보수, AI 모델 학습 데이터 정비, 디지털 설계와 시뮬레이션 조작 등의 역할은 기존 조선업에는 없던 직무였으며, 이제는 전문 교육을 통해 충분히 청년 인력 유입이 가능한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즉, AI는 단지 기계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사람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기술인 셈이다.
조선업이 AI로 인력난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들
AI가 조선업의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기술을 잘 도입하고 정착시키기 위해선 몇 가지 선결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현장 친화적인 시스템 설계다.스마트 장비가 아무리 정밀하더라도, 작업자가 어렵게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사용되지 않는다.실제 현장에서는 조작법이 복잡하거나, 인터페이스가 외국인 근로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경우, AI 시스템이 방치되거나 무용지물이 되는 일이 발생한다.
둘째는 교육 시스템의 개편이다. AI가 있는 조선소에서는 기존의 단순 작업자 교육이 아닌, 디지털 협업 중심의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로봇 보조작업자, AI 관제 분석가, 스마트 장비 오퍼레이터 등 새로운 직무에 적합한 인재 양성이 병행돼야 한다. 현재의 조선업 교육 체계가 이러한 기술 전환에 맞춰 진화하지 않으면, 인프라만 있고 사람이 없는 ‘반쪽짜리 스마트야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는 중소 협력업체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대형 조선소는 AI를 빠르게 도입할 수 있지만, 다수의 협력업체들은 예산, 인력, 장비 측면에서 이를 따라가기 어렵다. 조선소 본사가 시스템과 장비를 공유하거나, 공동 활용 인프라를 조성하고, 공정별 표준화된 AI 도구를 도입함으로써 전체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조선업의 AI 활용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시스템, 문화가 함께 바뀌는 복합 전략이다. 기술은 준비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조선업이 그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누구와 함께 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선택이 향후 10년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조선업이 AI를 통해 인력 위기를 근본적으로 넘어서려면
AI는 단기적으로 조선소의 인력 공백을 메우는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조선업 생태계를 재편하는 전략까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사람이 없으니 AI를 넣는다’는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시스템 도입은 일시적 효과에 그칠 수 있으며, 오히려 인력과 기술 간 괴리감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조선업이 진정으로 AI를 통해 인력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술의 도입에서 멈추지 않고, 그 기술을 누가, 어떻게 쓸 것인지까지 포함한 산업 구조 재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첫 번째 과제는 산업-학계-정부 간 협업 구조 확립이다.
현재 조선업 관련 교육기관은 대부분 기존 설계·생산 중심의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AI 협업 기술, 로봇 운영 이해, 디지털 공정 해석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현장 맞춤형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 분야를 미래 전략 산업의 핵심 축으로 보고 관련 인재를 적극 육성해야 하며, 산업계는 교육기관과 실무형 과정을 공동 운영하여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AI를 활용한 ‘숙련 기술 전수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 조선소에는 여전히 은퇴를 앞둔 고숙련자들이 많이 남아 있고, 이들의 경험은 디지털화되지 않은 채 사라지고 있다. AI가 이들의 작업 패턴, 판단 기준, 위험 회피 행동 등을 학습하고 기록한다면, 향후 신입 인력에게 경험 기반의 훈련 콘텐츠로 제공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 AI를 매개로 한 세대 간 지식 전달 체계로 진화할 수 있다.
셋째는 AI가 단순히 작업 보조를 넘어서 인력 전략 설계까지 참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I는 각 공정의 작업량, 근로자 수, 피로도, 기술 숙련도 등을 분석해 인력 재배치 제안, 휴게 시간 조정, 팀 단위 교체 전략 등을 수립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관리자는 보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작업자를 배치하고, 공정별로 필요한 기술 수준에 맞춰 팀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결국 AI는 조선업의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는 도구인 동시에, 조선소 조직을 재정비하고 인력 운영의 기준을 바꾸는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술만이 아닌, 사람, 시스템, 문화, 제도 전체를 바꾸는 시도가 동반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인력 부족 해결이 아닌, 지속가능한 인재 생태계로 가는 디딤돌로서 AI를 바라볼 때, 조선업은 진정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