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에서 AI가 배관 배치까지 조선 CAD의 진화
조선업에서 배관 설계는 단순하지 않다
조선업에서 배관은 단순히 물이나 연료가 흐르는 통로가 아니다.
선박 안에는 엔진에서 나오는 고온의 배기, 수천 톤의 해수를 이송하는 관로, 냉매를 흐르게 하는 파이프, 전기 케이블과 충돌하지 않게 배치되는 배관망 등 수천 개의 파이프가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다.
이 복잡한 배관 구조는 선박의 무게중심, 유지보수 접근성, 공간 효율, 공정 간 간섭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설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복잡한 배관 배치를 지금은 AI가 스스로 제안하고 결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과거에는 수십 명의 설계자가 도면을 바탕으로 배관 경로를 손으로 그리면서 간섭 여부를 일일이 확인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이 수많은 설계 데이터를 학습해, 공간 효율성과 간섭 최소화를 동시에 만족하는 최적의 배관 경로를 자동으로 계산한다.
조선 CAD 시스템의 진화는 단순한 자동화 기능 추가가 아니다.
이제는 설계자의 판단을 지원하고, 반복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대신 수행하며, 정확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향상하는 핵심 도구가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AI가 어떻게 배관 배치를 자동화하고, 조선 CAD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조선업에서 AI는 조선CAD에서 어떤 방식으로 배관 배치를 설계하는가
현재 조선소에서는 AI 기반의 배관 자동설계 알고리즘이 실제로 도입되고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자동 경로 생성’과 ‘간섭 회피’다. AI는 3D 공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두 지점 사이를 연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배관 경로를 계산한다. 이때 단순한 직선 연결이 아니라, 배관이 꺾이는 각도, 곡률 반경, 지지대 간격, 유지보수 공간 확보 여부까지 모두 고려해 설계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선박의 엔진 룸에서 주거 구역까지 냉방용 배관을 연결한다고 할 때, AI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판단한다.
경로상에 기계 장비나 전기 케이블이 있는가
현재 공간이 구조물로 막혀 있는가
다른 배관과 충돌하는가
유지보수 인력이 접근할 수 있는가
냉매 손실이 적은 최단 거리인가
진동 흡수가 가능한 설계인가
AI는 이런 다양한 조건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후, 설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복수의 배치 옵션을 자동 제안한다. 설계자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세부 조건을 변경해 재생성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판단해야 할 지점은 줄어들고, 전체 설계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진다.
뿐만 아니라, AI는 기존의 잘못된 설계를 스스로 찾아내는 능력도 있다.
조선 CAD에 연동된 AI는 기존 도면을 분석해 간섭 발생 가능성이 높은 구간, 비효율적인 배치, 과도하게 꺾인 배관, 지지대 누락 부위 등을 사전에 경고한다. 이는 단지 설계자의 편의 기능이 아니라, 품질 불량과 공정 지연을 줄이는 핵심 기능이다.
조선소업 조선 CAD 시스템은 어떻게 AI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는가
기존의 조선 CAD 시스템은 단순한 3D 모델링 툴에 가까웠다. 설계자는 모델을 직접 생성하고, 간섭 여부를 시각적으로 확인하며, 배관 경로를 마우스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경험에 따라 품질 편차가 컸다.
이제는 AI와 데이터 기반의 자동화 시스템이 기존 CAD에 통합되면서, ‘지능형 설계 보조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국내 대형 조선소들은 자체 개발 또는 협력 소프트웨어를 통해, AI 기반의 설계 도구를 내부에 탑재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스템 변화는 다음과 같다.
Rule-Based AI 설계 엔진: 조선소 내 설계 규정과 노하우를 AI 알고리즘으로 반영하여 반복 설계를 자동화
Real-Time Clash Detection: 3D 모델링 중 실시간으로 간섭 여부를 탐지하고 자동 경로 재설정
Auto Routing with Constraints: 중량 제한, 곡률 제한, 공정 순서 제한 조건을 AI가 판단하여 자동 배관 경로 설계
Digital Twin 연동: 설계 데이터를 실제 생산·조립·시운전까지 연동하여 오류를 줄이고, 선박 상태 예측 가능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조선 CAD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설계 품질을 실시간으로 판단하고 최적 해를 제시하는 AI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조선업과 AI설계자의 공존이 조선 설계의 미래다
많은 사람들이 AI 설계가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조선 설계에서는 오히려 사람과 AI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AI는 빠르고 정확하지만, 선박 설계에는 발주처의 요구, 인증 기준, 특수 공간 조건 등 정형화하기 어려운 변수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설계적으로는 효율적인 경로가 있어도, 실제 시공 시 접근이 어렵거나 안전 문제가 있다면 그 경로는 채택할 수 없다.
이처럼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 존재하며, AI는 그 판단을 보조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조선소 설계자들은 AI를 통해 반복 작업에서 벗어나, 더 창의적인 설계 판단과 전략적 결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설계 품질은 일정하게 유지되며, 신입 설계자도 빠르게 업무에 적응할 수 있다. AI와 협업하는 능력은 이제 조선업 설계자에게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결국 조선 CAD의 진화는 기술의 진보이자, 사람의 판단이 더 빛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다.
AI는 모든 것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반복을 줄이고 오류를 예방하는 ‘기술 동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앞으로의 조선 설계는 더 복잡하고, 더 정밀해질 것이다. 그런 시대일수록 사람과 기술의 협업은 더욱 중요해진다.
AI가 설계도를 그리고, 사람이 완성도를 만든다. 이 조화가 이루어질 때, 조선업은 설계에서도 진정한 혁신을 맞이할 것이다.
조선 CAD의 진짜 진화는 ‘AI 기술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달려 있다
조선소 설계 환경이 AI와 함께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조직 내부의 수용성 문제다. 대부분의 조선소는 수십 년간 동일한 방식으로 설계 업무를 진행해 왔고, 경험 중심의 설계 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특히 고경력 설계자일수록 새로운 도구보다는 익숙한 방식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AI 기반 설계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거나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저항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조선 CAD의 진짜 진화는 단지 ‘좋은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현장에 맞게 흡수하고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설계자가 AI 시스템을 단순히 보조 도구가 아닌 공동 설계 파트너로 인식할 수 있도록, 조직은 명확한 목적과 효과, 실제 성공 사례를 반복적으로 공유하고 내재화해야 한다.
또한, 현재의 AI 설계 기술은 아직 모든 상황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특히 비표준 선박, 특수 규제 적용 선박, 군수 목적 설계 등은 단일 알고리즘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설계자만이 알고 있는 발주처의 세부 요구사항, 현장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적 판단은 여전히 설계의 품질을 결정짓는 요소다.
따라서 AI는 설계의 전체 흐름을 장악하기보다는, 효율화와 오류 감축에 집중해야 하며, 사람의 판단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체계를 뒷받침해야 한다.
조선소는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큼, 기술을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툴 사용자에서 벗어나, AI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와 한계를 이해하고, 현장 문제를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할 수 있는 ‘디지털 설계자’가 조선업의 미래를 주도할 것이다.
이들은 기술과 인간의 사이에서 다리를 놓고, AI를 현장 언어로 번역해 내는 새로운 중간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조선 CAD의 진화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그것은 설계 업무의 철학을 바꾸는 일이며,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더 경제적이며, 더 빠르게 선박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기술로 답하려는 노력이다.
AI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100% 제시하진 못하더라도, 설계자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창의적 도구가 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도구가 조선업 내부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날, 설계는 더 이상 과거의 노하우를 반복하는 작업이 아닌, 기술과 사람이 함께 완성하는 진화된 결과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